공동주택 전기차 충전기 설치의 현실

테슬라부터 에코프로까지. 멀게만 느껴지던 전기차 열풍은 이제 모두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2023년 5월 기준으로 전기차 등록 대수는 45만 대, 무려 전체 차량 중 1.8%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요. 지나가는 차량 100대 중 두 대는 전기차인거죠. 전기차 택시의 보급도 매우 빨라서, 택시 이용시에 전기차를 간접체험하는 분들도 늘어났습니다.
전기차가 이렇게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 대비 전기차 충전 인프라 부족으로 전기차 차주들의 스트레스가 가중될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기사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요.
이번에는 구축아파트가 아닌 공동주택에서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는 것에는 과연 문제가 없을지, 그 궁금증을 풀어보겠습니다.

블랙아웃은 왜 발생할까?

첫째는 전기의 속도와 관련됩니다.
우리가 흔히 전기 관련한 기사를 접할 때, kW와 kWh라는 단위를 보게 되는데요. 쉽게 비유해서 표현하자면 kW는 전기를 사용하는 속도, kWh는 전기 사용량을 말합니다. 3kW의 속도로 전기를 1시간 사용했다면 3kWh의 전기를, 2시간을 사용했다면 6kWh의 전기량을 사용한 거죠.
공동주택은 건축 시 “이 정도의 속도로 전기를 사용하겠습니다”라고 한국전력과 계약을 맺습니다. 한국전력은 계약한 속도로 단지에 전기가 공급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설치합니다. 그런데 에어컨 같은 높은 속도의 전력 소모가 필요한 전자제품이 보편화되면서 갑작스레 너무 높은 속도를 요구하게 되면 정전이 발생하는 것이죠.
전기용량 역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관에서는 화력, 수력, 원자력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여 저장해 둡니다. 그렇다면 생산해서 저장해 둔 전기량보다 소비되는 전기량이 많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요. 특히 최근에는 지역별 ‘전력 불일치 현상’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전력을 생산하는 시설들은 주로 경상, 전라, 제주 등 수도권과 먼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나,전기 소비가 많은 첨단산업 설비는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송전선로가 부족한 인프라 문제까지 겹치면서 어느 지역에서는 전기량이 남고, 어느 지역에서는 전기량이 부족한 불균형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블랙아웃은 전기의 사용속도와, 전기의 용량이 두 축으로 문제가 되어 발생하는 거예요.

구축아파트 말고, 최신의 공동주택은 전기차 인프라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작년부터 아파트 단지 내 전기차 충전기 설치가 의무화 되었어요. 신축 아파트의 경우 총 주차면수의 5%, 기존 아파트의 경우 2% 이상에 반드시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해야 합니다.
2% 수준으로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한다면 기존 선기 설계 시 고려했던 여유분을 활용하면 되는 만큼, 큰 부하가 걸리지 않는 단지들도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벌써 전기차의 점유율이 2%에 육박하는데,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전기차의 점유율이 5%, 10%까지 계속해서 늘어난다면 그만큼의 충전기를 설치하기에는 기존 전기 인프라에 큰 부담을 주겠죠.

전기차는 그럼 전기를 얼마나 쓰고 있을까?

현재 주택법 상으로 세대 당 3kW 이상 전력이 공급되도록 설계해야 되는데, 아파트 단지를 실제 검수해보면 대부분 3kW 이하로 공급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속도의 측면을 볼까요? 단지에 설치하는 보통의 완속 전기차 충전기의 속도는 7~11kW인데요. 전기차 충전기 한 대에 공급되는 전력이 두~세 개 세대에 공급되는 전력과 유사한 수준이라는 의미입니다. 주차장에 설치된 완속 전기차 충전기로 전기차를 충전할 때, 사실은 내집과 옆집, 윗집에 공급되는 전력의 수준으로 전기를 먹고 있는 것이죠.
전기사용량 관점에서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인 가구의 월평균 전기 사용량은 230kWh 였습니다. 저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데, 지난 6월의 전기사용량은 103kWh였어요.
그렇다면 전기차 충전을 위해 한 달 동안 사용하는 전기량은 얼마나 될까요? 2020년 기준 자동차 1대당 평균 주행거리가 37.8km에 이르니, 한달동안은 보통 1,134km의 주행을 하겠네요. 국민 전기차 아이오닉5의 공인 복합전비인 4.9km/kWh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한 달에 사용하는 전기량은 231kWh가 됩니다. 전기차 한 대가 사용하는 한 달 전기량이 1인 가구의 월 평균 전기 사용량보다 높네요. 저와 같은 사람이 무려 2달을 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전기를 쓰는 거죠.
전기차 1대가 한달 사용하는 전기량이, 1인가구(+고양이 2마리)의 사용량보다 훨씬 많네요.

공동주택이 전기차를 감당하지 못할 날은,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어요.

정리하면, 전기차 충전기 한 대 설치를 위해서는 적어도 아파트 이웃이 한 세대에서 두세대가 늘어나는 만큼의 전기 인프라가 더 필요하겠어요. 현재 충전기 설치 의무인 2% 수준은 지금 세대의 2~4% 정도가 추가로 전기를 사용하는 수준이니 아직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전기차 비중이 10%가 된다면요? 현재 공동주택 세대 수 대비 10~20%의 세대 수가 더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끌어와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런 수준으로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설치가 쉽지 않은 현실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 계속해서 증가할 전기차 수 대비 충전 인프라는 어떻게 구축해야 할까요?
이제는 전기차 충전기를 많이 설치하는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차 충전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하고 준비해 나가야 할 시기입니다.